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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12)‘중국은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12)‘중국은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07-29 오전 10:19:48

이 칼럼은 앞 글에 이어집니다. 혹 읽지 않았다면 다음 사이트에 꼭 들렸다 오세요.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171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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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식의 지평이 '화폐전쟁' 수준에 머물렀다면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겁니다. 화폐전쟁은 오히려 중국을 '패배의 전장'으로 몰고갈 뿐이기 때문이다. '담벼락을 높이 쌓아놓고 서방 금융재벌의 공격에 대응하자'는 주장에는 조소를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글로벌 금융/자본시장에서의 퇴보를 자초할 뿐이니까요.

송홍빙이 그리는 중국은 '제조업 근력만 자랑하는 거인'에 불과합니다. 금융이 없으니 치밀하지 않습니다. 힘자랑만 하지 실력은 없어 보입니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로보트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화폐전쟁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 새로운 책이 등장합니다. 2009년 8월 발간된 '金融的邏輯(The Logic of Finance)'라는 책이었지요.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천즈우(陳志武)가 썼습니다. 국내에서는 '자본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번역됐지요.


이 책은 '화폐전쟁'이 궁극적으로 얘기하려 했던 것을 뒤집어 엎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음모로만 볼 게 아니야'라는 식이었지요.



천즈우는 개인사로 얘기를 풀어갑니다.

"대학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다.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를 한 번 가는 것만도 커다란 영광이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그 때 은행에서 학자금 융자를 받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여윳 돈이 생겨 상하이에 갔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꿈에 그리던 상하이를 갔으니 그 효용은 최고였을 것이다. 지금은 상하이를 가는 게 고역이지만 말이다."

대학 시절에 학자금 융자를 받는 것, 그게 바로 금융이라고 천즈우는 말합니다. 은행의 학자금 융자는 해당 학생의 미래가치를 담보로 돈을 방출하는 겁니다. 학생은 미래 가치를 끌어당겨 현재에서 돈을 쓰니 풍족해 질 수 있습니다. 금융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지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미래에 걷을 세금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합니다. 국채입니다. 미래 수익을 현재에 당겨 사용하는 것이지요.

"만약 서기 1600년 당시의 국가를 두 팀으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국고 깊숙이 막대한 양의 보물을 쌓아둔 국가를 들 수 있다. 명나라는 은 1250만냥, 인도는 국고에 금괴 6200만 개를, 투르크 제국은 금괴 1600만 개를 저장해두었다. 다른 한 팀은 부채가 산처럼 쌓인 국가들로 스페인,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도시국가 등이다. 그렇다면 400년 전부터 19~20세기까지 어느 팀에 속한 국가가 더욱 크게 발전했을까?"

답은 나왔습니다. 부채가 많은 나라가 더 발전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미래 가치'를 현재로 끌어들여 사용한 것이지요. 부채는 많았지만 가동할 수 있는 현금은 더 많았던 겁니다. 금융의 힘이지요. '자본화'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송홍빙과의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부채를 악(惡)으로 봤습니다. 특히 미국은 늘어가는 국채로 인해 금융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국고에 1조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쌓아놓고 있는 중국이 패권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얘기였지요.

그러나 천즈우는 국가 곳간에 달러가 쌓여있다고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입니다. 자본화에 앞서는 나라가 이긴다는 것이지요. 현재에 쓸 돈이 많으니까요. 자본화의 힘입니다. 그러면서 서구 여러나라의 패권이전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국채뿐만 아닙니다. 은행대출, 회사채, 주식,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은 현재 부를 넓혀준다고 했습니다. 결국 자본화에 누가 더 앞서느냐에 따라 위상이 결정되는 겁니다.

저자는 심지어 투기활동에도 호의적입니다. 투기활동을 일반적인 투자행위이자 기술혁신의 원동력이라고 보는 것이지이요. 투기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끊임없이 거품현상이 나타났지만 그에 힘입어 과학기술의 혁신에 저비용의 자본을 대량으로 공급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서구적인 시각입니다.

'자본의 전략'은 더 나가 중국 금융시스템을 공격합니다. 중국 고유의 문화/전통에 의해 '자본화'정도가 떨어졌다는 반성입니다. '주식시장 역시 민간 창의를 고취시키는 등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입니다. 국유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중국 주식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그리고는 말합니다.

'중국은 아직 멀었다'

무서운 말입니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 말이지요.
나의 문제점을 아는 자라야만 발전이 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합니다.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문턱을 낮추고, 금융/자본시장 시스템을 선진화하라"는 것이지요. 이와함께 중국 자본시장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요인들을 지적하고, 비판합니다. 나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자기변화를 촉구합니다. '중국이 최고다'라며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송홍빙의 '화폐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혹 중국 팀장 아니세요?' 일반 제조업체나 금융회사, 행정부, 심지어 대학 등 대부분의 사업장에 '중국 팀'이 있습니다. 중국 팀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지요. 팀이 있으면 팀장이 있고, 부서가 있으면 부서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혹 중국 팀장이 아닌가요? 이 땅의 중국 팀장님들, 한 번 뭉쳐 봅시다. 나와 회사, 그리고 국가의 미래를 얘기합시다. 제가 그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개봉박두!

'화폐전쟁'과 '자본의 전략'.

두 책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 논쟁을 대변합니다. '미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송홍빙식 사고와 '미국의 선진 금융기법을 더 배워야 한다'가 지금 부딪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습니다. '화폐전쟁'과 '자본의 전략'을 동시 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을 극복하기 위한 화폐전쟁은 분명 시작됐습니다. 아직 국지전이지만 말입니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됐고,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해야 한다는 대담한 전략도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달러 일색으로 구성됐던 외환보유고에서 유로와 일본 엔화가 늘어가고 있고, 금도 사들이고 있고요. 송홍빙이 주장했던 그대로입니다.

그런 한편으로는 천즈우가 제시했던 금융선진화를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는 비유통주 개혁 등 과감한 체질개선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최근에는 주가지수선물거래도 시작됐습니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정비되고 있고, 보험 상품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서구 배우기이지요.

대외적으로는 '화폐전쟁'에 나서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자본의 전략'식 금융시장 선진화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이 더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자본시장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혹 우리가 노릴 수 있는 공간은 없을까요?

다음 주 월요일 칼럼에서 새로운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