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생태계/지식

일자리·부동산·사교육 따라 '빈부 쌍곡선' 발버둥쳐봐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

일자리·부동산·사교육 따라 '빈부 쌍곡선' 발버둥쳐봐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

한국일보 | 입력 2010.07.11 22:09

[양극화, 대한민국이 갈라진다]
소득분배 지표 등 악화일로 하위층 전락땐 가난 대물림
부자가 선망아닌 증오대상에 사회통합은 요원한 꿈으로

10여년 전, 혹독했던 환란 구조조정 한파에 휩쓸려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강성훈(53ㆍ가명)씨. 이미 중간정산을 받았던 터라 손에 쥔 퇴직금은 1,50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막막했다. 집 한 채 없이 두 자녀를 키워야 되는 절박한 처지에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 9일 저녁 서울 노원구 중계동.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방수 천을 덧댄 집들 너머로 반듯반듯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부자와 서민, 둘로 갈린 2010년 대한민국의 한 단면이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지인 소개로 한 부품 중소기업에 들어갔지만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금세 옷을 벗어야 했고, 아동용 서적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가 3년을 넘기지 못한 채 접고 말았다. 다시 절치부심. 4년 전, 대출까지 받아 아내와 함께 자동차용품점을 열었다. 처음엔 자리를 잡나 싶더니, 최근 불황 여파에 월세와 대출이자 내기도 급급한 처지다. *관련시리즈 5면

강 씨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돈도, 직업도, 그리고 희망까지 모두 잃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애를 태우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 중하위권인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그래도 애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썩 잘했다"며 "제대로 된 과외를 못 시켰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자책했다. 그는 이렇게 가난이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우리 사회 부자와 서민들의 격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만큼이나 극명하다. 분배를 앞세웠던 참여정부도, 성장을 전면에 내세운 현 정부도 빈부 격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고, '소득의 양극화'는 곧 '기회의 양극화'로 전이돼 일단 하위층으로 전락하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시 상류층 대열에 합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소득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ㆍ2003년 0.270 →0.294), 소득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의 하위 20% 소득 배율ㆍ4.24배 → 4.94배), 상대적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가구의 비율ㆍ10.6% →13.1%) 등 소득분배지표는 모두 악화일로다.

소득을 지렛대 삼은 자산의 양극화는 더 극심하다. 100억대 자산가인 조명희(63ㆍ가명)씨는 "지난 10여년 사이 아파트나 토지, 상가에 투자한 돈이 대부분 몇 배 이상으로 불었다"고 말했다. 고금리나 부동산가격 폭등처럼 서민들에게 고통스런 환경일수록, 부자들에겐 오히려 자산증식의 기회가 된 것이다.

빈부격차의 3대 주범은 ▦일자리 ▦부동산 ▦사교육이다. 소득의 양극화를 찾아 들어가면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문제로 나눠진다. 이런 소득의 양극화에 더해 뿌리 깊은 투기심리와 부동산가격의 폭등은 유주택자(특히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간의 자산 양극화를 확대시킨다. 그리고 사교육을 통해, 자식세대들까지 고스란히 대물림 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 양극화 해소, 집은 소비재라는 인식 확산을 통한 자산 양극화 해소, 그리고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부의 대물림 방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굳어진 빈부의 양극화 구조 하에서 부자는 서민들에게 선망이 아닌, 증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양극화 해소 없이 사회통합도 불가능한 이유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