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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느림’의 위력 머스크, 블리자드, 루이비통 등 슬로경영 사례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느림’의 위력 머스크, 블리자드, 루이비통 등 슬로경영 사례 2010년 07월 09일(금)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연세대 경영학부 신동엽 교수는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2008년 금융위기와 2009년 도요타 사태의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20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인 ‘효율성 지상주의 함정(efficiency trap)’에 빠졌다는 것이다.

20세기 산업사회의 핵심가치는 ‘효율성’이지만 이 효율성 지상주의가 역설적으로 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사이몬, 마치, 와익, 퍼로우 등 경영학의 전설적 거장들은 여유와 느슨함의 장점을 강조하는 ‘의도적 비효율성(deliberate inefficiency)'의 필요성을 일치감치 역설했다.

효율성 지상주의로 인해 실패를 맞본 경우는 도요타뿐만이 아니다. 1995년 제약회사 머크의 레이 길마틴 사장은 기업 목표를 ‘가장 빨리 성장하는 회사’로 정하고,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절염 치료제 ‘Vioxx’ 출시시기를 성급하게 앞당기는 과정에서 안정성을 무시했다.

결국 ‘Vioss’는 심혈관 계통의 부작용으로 리콜사태를 겪었다. 머크는 사태해결을 위해 41억 달러의 피해배상기금을 조성하는 등 금전적 손실과 함께 잇단 소송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다.

혼다 자동차 경주팀 44년만에 F1에서 철수

반면 느림의 가치를 기존 산업과 비즈니스에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경쟁력을 확보해나가는 ‘슬로 비즈니스’가 최근 세계적인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 느린 항해로 큰 성공을 거둔 세계 최대의 해운선사 머스크(Maersk)의 화물선.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64년부터 44년간 국제자동차연맹이 주최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경주대회 ‘F1’에 참여해온 혼다는 최근 F1 철수를 결정하고 자동차경주팀을 매각했다. F1에 투입됐던 연구인력 400여명을 친환경자동차개발에 투입했는데, 이는 스피드만으로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패스트푸드 시장에서는 느림의 가치를 창출하려는 역발성적인 시도가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프레시니스버거, 크라제버거 등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시간이 더 걸리는 직화구이 등의 조리법을 내세워 패스트푸드 대명사인 햄버거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프리미엄 햄버거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주영민 수석연구원은 “신기술 출현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한편에서는 느림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욕구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오래 쓸 수 있는 친환경 상품, 전통적 상품을 선호하는 ‘스마트 소비계층’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주 수석연구원은 또한 “더 빠르고, 더 새로운 것을 탐색하던 습관에서 ‘더 느리고, 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재점검하는 방향으로 마인드를 전환할 경우 의외의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대표적인 성공 사례들을 열거했다.

세계 최대 해운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가 대표적인 사례.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하면서 머스크는 과감한 대책을 내놓았다.

세계 주요 항로의 컨테이너선 항해속도를 시속 24~25노트(44~46km)에서 시속 12노트(22km)로 감속시켰다. 빠른 배송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운송업계에서는 머스크의 결단을 흥미롭게 지켜보았으나, 결과는 놀라왔다.

연료비가 30% 정도 줄어들면서 비용 및 운송료를 다운시킬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산화탄소 발생량 역시 30%나 줄어들었다. 또한 비운항 선박 투입을 통한 선복과잉문제가 개선되면서 오히려 경영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장인의 우아함과 독창성을 중시하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역시 느림의 가치를 통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엄격한 제품 테스트를 실시하고, 재고 제품에 대해서는 할인 없이 폐기하되, 일단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는 평생 수리보증을 실시하고 있다.

카페은행 변신 후 금융상품 판매 2배 늘어

무엇보다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곳은 금융권이다. 미국 서부 오리건주의 중소 지방은행인 움프쿠아 은행을 찾으면 이곳이 은행인지, 카페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호텔급의 안내 데스크, 고급 카페, 인터넷 이용 회의실 등을 설치해 첨단, 스피드, 신뢰 등으로 대변되던 은행 이미지를 편안함, 친근함으로 변화시켰다.

▲ 미국의 은행 움푸크아(Umpqua)는 은행, 카페를 결합한 공간을 통해 큰 폭의 실적개선을 달성했다. 

이곳에서는 영화상영, 요가, 뜨개질 강습, 디자인 강좌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은행을 찾지 않았던 젊은 층, 가정주부 등을 고객으로 유인하고 있다. 여러 가지 행사도 개최되고 있다. 그 결과 이 은행의 평균 예금액은 일반 은행의 130%에 달하고 있으며, 금융상품 판매액은 일반 은행의 2배를 넘고 있다.

일본 아오모리 현의 기무라 아키노리는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애받지 않고, 비료 등 성장촉진제를 완전히 배제한 100% 자연농법을 시작해 10년 만에 썩지 않는 사과를 재배하는데 성공했다. 기무라의 사과는 현재 온라인 판매에서 3분이면 품절되고, 이 사과를 재료로 만든 수프는 1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이나식품공업은 한천식품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50여 년간 단 한 차례의 적자도 내지않고, 성장을 지속해온 기업이다. 이 회사의 경영목표는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직원 행복’이다.

츠카코시 히로시 회장의 경영철학은 ‘나이테 경영’이다. 나무가 나이를 먹을 때마다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듯 기업도 고이윤 추구를 위한 급성장을 경계하고, 직원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천천히 순리에 맞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으로 유명한 게임업체 블리자드 역시 빠른 제품출시보다 완벽한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경영원칙을 추구하고 있다.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게임은 출시를 무기한 보류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느린 경영원칙이 연간 매출액 1조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게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됐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7.0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