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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한스타일

국순당 3남매의 막걸리 전쟁

국순당 3남매의 막걸리 전쟁
‘술 명가’ 전통 ‘막걸리’로 이어갑니다

첫째 배중호 국순당 사장(오른쪽)
53년생/ 연세대 생화학과/ 롯데상사 무역부/ 배한산업 (국순당 전신) 이사/ 93년 국순당 대표이사(현)

둘째 배혜정 배혜정누룩도가 사장(가운데)
56년생/ 2001년 배혜정누룩도가 사장(현)

셋째 배영호 배상면주가 사장(왼쪽)
59년생/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85년 배한산업 입사/ 93 년 국순당 전무/ 96년 배상면주가 대표(현)

지난 5월 10일 농림수산식품부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기를 기원하면서 ‘16강 막걸리 선발대회’를 열었다. 살균 막걸리 4종과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막걸리 12종이 16강 막걸리로 선정됐다. 이 중 눈에 띄는 막걸리 3가지가 있었으니, ‘이화주’(국순당), ‘우곡’(배혜정누룩도가), ‘내고향 명품 막걸리’(배상면주가)다.

세 막걸리는 뿌리가 같다. 배혜정누룩도가, 배상면주가, 국순당은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의 삼남매가 각각 운영하는 회사들. 첫째 배중호 대표가 국순당, 둘째 배혜정 대표가 배혜정누룩도가, 셋째 배영호 대표가 배상면주가의 선장이다. 결국 막걸리시장을 놓고 명실상부 한국 최고 ‘술 명가’ 삼남매가 화끈하게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국순당, 배상면주가, 배혜정누룩도가는 각각 사업영역이 달랐다. 국순당은 백세주를 중심으로 한 약주, 배상면주가는 산사춘, 오매락 등의 전통주가 주력상품이었다. 배혜정누룩도가만이 막걸리로 시작해 막걸리로 승부를 걸어온, 막걸리 전문업체다.

배혜정 대표는 2001년 ‘막걸리의 고급화·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배혜정누룩도가를 창업했다. 처음 내놓은 제품이 ‘옥막걸리’.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국내산 쌀과 국내산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연히 원가가 높아졌다. 막걸리 한 병에 500원 하던 시절, 옥막걸리 판매가는 800원으로 책정됐다. 결과는 대참패. 당시 오빠와 동생이 하는 국순당과 배상면주가가 승승장구하던 때였던 만큼 ‘배씨’ 브랜드를 단 배혜정누룩도가 막걸리도 잘 될 거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오산이었다.

외동딸을 위해 한국 최고 전통주 명인인 아버지 배상면 국순당 창업주가 나섰다. 아버지와 함께 1년 동안 연구실에서 밤샘 연구를 거듭한 끝에 ‘부자’라는 16도짜리 독한 막걸리를 탄생시켰다. ‘부자’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옛 상류층에서 즐겨마시던 탁주를 재현했다. 최고급 경기미를 원료로 쓴 데다 물과 인공첨가물을 가미하지 않은 순수한 막걸리, ‘부자’는 명품 막걸리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출시 이후 줄곧 백화점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또 일찌감치 수출에 눈을 돌려 2003년부터 일본에 진출했다.

국순당, 생막걸리로 턴어라운드

배혜정누룩도가가 삼남매 중 막걸리 원조지만, 현재 막걸리 전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국순당이다.

국순당은 지난해 막걸리로만 8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올해는 1분기 막걸리 매출액만 무려 105억원이다. 이 같은 막걸리 판매 호조에 힘입어 국순당의 1분기 매출액은 227억원, 영업이익은 33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57%, 103% 늘어났다. KTB투자증권은 올해 국순당이 막걸리를 팔아 584억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순당의 지난해 매출액은 548억원이다. 막걸리 판매액 80억원을 제외하면 480억원. 지난해 막걸리를 제외하고 전통주를 팔아 올린 매출액 이상을 올해 막걸리에서 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KTB투자증권은 올해 국순당 예상 매출액을 1030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 대비 2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백세주가 성장 정체에 빠지면서 오래도록 헤매온 국순당이 드디어 올해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를 시작한다 할 수 있다.

이 같은 기대감을 반영해 국순당 주가도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지난해 6월 6000원대이던 주가가 6월 17일 현재 1만5300원까지 뛰어올랐다. 그뿐인가. 애널리스트들은 저마다 국순당 목표주가를 상향조정하고 ‘비중확대’를 외쳐댄다.

국순당이 막걸리사업에 뛰어든 시기는 지난해 5월이다.

국순당이 막걸리사업에 뛰어들자마자 대성공을 거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선 ‘유통기한을 30일로 늘린 생막걸리’라는 개념으로 홈런을 쳤다. 생막걸리는 계속 발효가 이어지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10일 이내로 짧은 게 흠이다. 빠른 시간 내에 팔려나가지 않으면 금세 상해서 못 먹는다. 때문에 업체들은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발효를 멈추게 한 멸균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멸균 막걸리는 생막걸리에 비해 맛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국순당은 지난해 5월 업계 최초로 10℃ 이하 냉장보관 시 30일 동안 보존이 가능한 생막걸리인 ‘국순당 생막걸리’를 선보였고, 예상대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국순당이 생막걸리 유통기한을 30일로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발효제어기술’과 ‘냉장유통시스템’에 있다. 일명 샴페인 발효법이라 불리는 발효제어기술은 살아 있는 효모의 활성을 조절하고 외부 공기 유입을 차단시켜 더 이상 발효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더 이상 발효가 안 되는 만큼 보존기간이 길어진다. 또 샴페인 발효법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부러 탄산을 주입하지 않아도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업계 최초로 냉장유통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생막걸리의 대량 생산과 전국 유통이 가능해졌다.

딸 배혜정 씨가 막걸리 원조

국순당 생막걸리’의 지난 1년간 누적판매량은 3000만병. 출시 첫 달인 지난해 5월에 17만병이 팔렸던 ‘국순당 생막걸리’가 지난 4월에는 판매량이 63만병으로 늘어났다. 월매출만 20억원이 넘는다.

수출도 호조세다. 일본, 중국, 미국, 호주 등에서 3.99달러에 팔리는 ‘국순당 생막걸리’는 수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20만병이 팔리는 성과를 거둬냈다.

차별화된 개념의 막걸리를 내놓은 게 첫 번째 성공비결이라면, 두 번째 성공비결은 백세주로 다져온 탄탄한 유통구조 덕이다. 국순당은 전용 도매점만 75개를 거느리고 있어 전국적인 음식점 영업이 가능하다. 역시 백세주로 다져진 마케팅 능력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한편 국순당은 지난 4월 말 ‘우리쌀로 빚은 국순당 생막걸리’를 내놓고 새로운 바람몰이를 시도 중이다. ‘국순당 생막걸리’ 원료가 중국쌀이라는 논란이 빚어지면서 출시한 상품. 국순당은 아예 ‘국내산 쌀 중에서도 특히 1년 이내에 수확한 쌀만을 사용했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막내 배영호 사장이 대표로 있는 배상면주가 공세도 만만치 않다. 사실 배상면주가는 국순당보다 앞서 ‘대포막걸리’라는 제품으로 막걸리시장에 발을 들여놨다. 그러나 국순당 생막걸리만큼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에 배상면주가는 국순당처럼 차별화 포인트로 승부해본다는 계산 아래 ‘첨가물을 아예 뺀 생막걸리’를 준비 중이다. 대부분의 생막걸리업체들은 유통기한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또 맛을 좀 더 좋게 하려는 심산으로 막걸리에 아스파탐, 아세설팜칼륨 등의 첨가물을 관행적으로 넣는다. 배상면주가는 이 같은 관행에서 벗어나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순수한 생막걸리를 내놓는다는 방침. 이와 관련 배상면주가 측은 “유통기한은 짧아지더라도 건강에 좋은 막걸리를 선보이고 싶다”고 전한다.

배영호 사장은 국순당이 막걸리로 되살아났듯, 배상면주가도 막걸리로 반전의 기회를 잡을 것을 기대한다. 지난해 배상면주가는 매출액 178억원에 영업이익 4400만원, 당기순손실 4000만원을 기록했다.

한편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아온 배혜정 대표가 40이 넘어 배혜정누룩도가를 창업하고 처음부터 홀로서기를 시도한 반면, 배중호 사장과 배영호 사장은 국순당 모체인 배한산업에서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배중호 사장은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으로 대학도 아예 연세대 생화학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 롯데상사 무역부에서 잠시 일하다 80년 배한산업 부설연구소장으로 가업에 합류했다. 84년 이사를 거쳐 93년 국순당 대표이사가 됐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출신 배영호 사장은 85년 배한산업에 입사했다가 87년 독립하겠다며 강릉주조를 설립했다. 강릉주조는 이후 국순당술도가로 이름을 바꾼다. 93년 배한산업과 국순당술도가가 합쳐져 지금의 국순당이 만들어졌다. 새로 만들어진 국순당에서 형이 사장을 맡고, 동생은 전무를 맡았다. 그리고 96년 배영호 사장은 다시 ‘배상면주가’를 설립하고 또 한 번 독립해나와 오늘에 이른다.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62호(10.06.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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