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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지원

종편 지원 ‘콘텐츠 제작 선진화안’ 논란

종편 지원 ‘콘텐츠 제작 선진화안’ 논란
정부, 저작권 제작사 소유 등
종편 준비 신문사 요구 담아
제작사·종편 추진쪽은 반색
지상파 “편향된 정책” 격앙
한겨레 이문영 기자 메일보내기
» 종편 지원 ‘콘텐츠 제작 선진화안’ 논란
종합편성채널 지원을 위한 ‘범정부적 협업’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뛰어들었다. 9일 ‘방송콘텐츠 제작시스템 선진화방안’을 발표하면서다. 문화부 발표는 콘텐츠 생산·유통을 둘러싼 지상파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해묵은 갈등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방송>(KBS)이 각각 종편의 ‘외형적 틀’(제도 도입)과 ‘먹거리’ 마련(수신료 인상 통한 종편 광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면, 문화부 정책은 콘텐츠라는 종편의 ‘내용적 생존기반’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화부도 이번 정책 발표가 “종편 도입과 디지털화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비해 다매체 다채널에 적합한 방송콘텐츠 제작유통체계로 전환”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뼈대는 지상파와 외주제작사가 줄다리기 해오던 콘텐츠 생산·유통 시스템에 대한 전면 수술이다. 문화부는 일단 제작사 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취했다. △방송사 편성을 전제로 제작이 이뤄지던 기존 시스템에서 정부가 편성과 무관하게 우수 콘텐츠를 사전 제작 지원하고 △방송사가 기획하고 돈을 댄 작품을 제작사가 제작하는 방식(저작권 방송사 보유)에서 제작사가 기획·제작·유통·판매를 담당하고 저작권까지 갖도록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제작사를 ‘지상파 하청공장’에서 탈피시켜 종편에 공급 가능한 “콘텐츠 라이브러리” 구축의 전진기지로 만든다는 게 문화부 복안이다. 케이블방송 업계 관계자는 “신규 방송사인 종편은 자체 제작 능력이 부족해 외주제작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지상파방송과 제작사와의 밀착 관계를 끊어 종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드는 게 문화부 의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문화부 관계자도 “제작사가 지상파방송에 목매고 있는 상황에선 종편 등 새 채널들은 공급받을 콘텐츠가 부족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새 채널을 위한 콘텐츠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화부 발표는 종편을 준비해온 신문사들의 요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조선일보>는 최근 ‘영상 콘텐츠 산업 절망과 희망’이란 시리즈 기획을 3차례 내보내며 지상파에 ‘종속된’ 외주제작사의 현실을 적극 부각했고,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및 <한국경제>도 지난해 기사를 통해 종편과 제작사간 네트워크 구축 및 콘텐츠 유통 구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작사들은 문화부 발표를 반기는 동시에, 콘텐츠를 매개로 향후 긴밀히 연결될 종편에도 기대를 보내고 있다. 국내 대표적 제작사인 삼화네트웍스는 최근 조선의 종편 컨소시엄에 공개적으로 참여했고, 김종학 프로덕션은 이미 5개 종편 희망 신문사(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한국경제) 모두와 콘텐츠 제공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이 회사의 박창식 대표는 “신문사들은 지상파와의 관계에서 겪는 제작사의 아픔을 이해한다면서 종편과 제작사가 권리를 동등하게 공유하는 방식 등 전향적인 제안들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종편이 살아남기 위해선 제작 전반을 아웃소싱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작사는 지상파 쪽에서보단 편하게 누울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종편이 아웃소싱을 통해 효과를 내게 되면 지상파에도 구조조정 회오리가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김승수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지상파가 제작사에게 요구해왔던 것보다 개선된 거래관계를 약속하는 사업자에게 종편을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조만간 방통위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문화부 정책에 지상파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문화부 발표 당일 공동성명을 내어 “외주제작사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수용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저작권 문제에서 특히 민감하다. <에스비에스>(SBS) 관계자는 “외주사는 직접 제작한 쪽에서 저작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제작비를 대주고 제작·편집 시설 제공 및 홍보·심의까지 책임지는 상황에서 저작권은 방송사가 갖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문화방송>(MBC) 한 피디는 “문화부의 정책은 방송사 드라마의 ‘공적 독점’을 해체하고 종편 등을 통해 ‘사적 독점’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우리나라 외주제작의 많은 문제는 드라마 위주의 정책에서 발생한다. 드라마에만 집중하다 보면 ‘제작 주체 다원화를 통한 프로그램 다양화’란 외주 활성화의 핵심 목표도 ‘획일성과 스타시스템 강화’로 왜곡되고 만다”며 “기획·편성·저작권 등을 둘러싼 방송사와 제작사 간의 권한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한 문화부 발표는 근본 해결책이 되기보다 종편 지원 정책으로만 기능하기 쉽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