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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과거·현재·미래…어떻게 생겼을까 [연합]

문자의 과거·현재·미래…어떻게 생겼을까 [연합]

신간 `문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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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문자의 역사'

우리가 매일 같이 접하는 문자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프랑스 계몽 사상가 볼테르는 문자를 일컬어 "목소리의 그림"이라고 했지만, 뉴질랜드 폴리네시아언어문학연구소의 스티븐 로저 피셔 소장은 신간 '문자의 역사'(21세기북스 펴냄)에서 문자가 단순히 이에 그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문자는 말의 시각적 표현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보유한 지식의 궁극적인 도구(과학)이자 사회의 문화적 매개체(문학), 민주적 의사표현과 지식 대중화의 수단(언론), 독자적인 예술형식(서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득한 옛날 돌과 뼈에 갈겨쓴 자국에서부터 오늘날 컴퓨터와 인터넷 언어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문자의 기원과 형태, 발전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파헤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부드러운 찰흙 위에 그림 이미지와 물표 기호를 사용한 불완전한 문자를 쓰다가 마침내 기원전 4000년과 3500년 사이에 수메르인의 표음식 표기법을 통해 완전한 문자를 착상해냈다.

이후 하나의 아이디어나 관습이 한 민족으로부터 다른 민족으로 전파되는 자극전파를 통해 문자의 기능과 기법이 확산하면서 주변의 여러 민족도 유사한 문자 체계나 문자를 고안한다.

그리스인은 모음 음소를 일관성 있게 표현한 문자를, 로마인은 현재 우리가 쓰는 알파벳 글자의 기본 모양을 창안했다. '콜럼버스의 발견'이 있기 훨씬 전 아메리카 대륙에는 에피올멕 문자, 마야 문자, 아스텍 문자, 믹스텍 문자 등 다양한 문자가 존재했다.

아시아에도 독자적인 문자, 즉 한자가 탄생했으며 이를 뿌리로 한글과 일본어, 베트남어 등의 '한자의 개량판'이 등장했다. 특히 저자는 한글을 "문자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효율적인 체계의 전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문자뿐 아니라 문자를 담아내는 그릇인 필기 용지의 역사도 함께 살펴본다. 필기 용지는 파피루스와 양피지, 종이를 거쳐 이제는 종이처럼 얇은 플라스틱 스크린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인류의 문명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문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말을 재생하는 방법은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선별과 개량을 거쳐 이제는 몇몇 '최선의 해법'만이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특히 라틴 알파벳의 세계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국제 표준 영어가 세계어로 부상하며 무엇보다 라틴 알파벳을 쓰는 문화권에서 탄생한 컴퓨터가 라틴 알파벳을 무기로 현대사회의 성격을 재규정하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세계인에게 로마자의 사용을 강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자화가 곧 자국어와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세계 언어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한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중국의 병음 표기법처럼 자칫 중심부 문자의 침입에 굴복할지 모르는 각 나라의 문자를 지속적으로 읽고 쓰도록 유도함으로써 고유의 문화와 언어 모두를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수철 옮김. 428쪽. 2만8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