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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DT 시론] `개방형 TV` 로 IT생태계 선점을

[DT 시론] `개방형 TV` 로 IT생태계 선점을

장석권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ㆍ정보통신정책학회장

영어로 `페인트(feint)'는 스포츠에서 공격수의 특정 행동을 지칭한다. 축구의 프리킥 상황에서 `킥커(kicker)'가 직접 공을 골문에 차 넣는 동작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옆의 동료에게 공을 살짝 밀어주어 다른 각도에서 차도록 하는 행동. 럭비에서 공격수가 패스할 것 같은 동작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들고뛰는 공격행동. 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페인트 동작이다. 페인트 동작을 취함으로써 공격수는 자신의 은밀한 공격 방향을 숨길 수 있고, 수비수의 전열을 흩뜨려 공격의 틈새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요즈음 IT관련 미디어 보도 중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슈는 단연 스마트폰 이슈이다. 논조는 첫째 한국의 모바일 디바이스 업계가 `스마트폰'보다는 `피쳐폰'에 치중해, 부가가치나 시장점유 측면에서 세계시장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것, 둘째 스마트폰의 사용환경인 무선 인터넷시장이 폐쇄적이고 개방형구조의 와이파이(WiFi) 기반은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의 플랫폼 경쟁력이 약해, 콘텐츠나 앱스토어 기반의 모바일생태계 구축경쟁에서 추격이 시급하다는 것 등이다.

이 지적은 전반적으로 옳다. 대책강구의 방향 또한 크게 보면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일한 패턴이 아바타, 독도문제, 천안함 사건 등 레파토리를 바꾸어가며 정치경제사회의 전 영역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회는 거의 일시에 `화들짝 놀람'의 패닉상태에 빠지고, 이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며, 상황인식이 무르익을 즈음에 가면 희생양을 찾아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씌워 사건을 종결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이러한 사태해결방식을 바라보면서 `페인트' 동작이 떠 오른 것은 그 양태가 마치 공격수의 `페인트' 동작에 속아 한데 몰려 우왕좌왕하는 수비수들 같기 때문이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속에서 예견된 공격에 대비하느라 모든 수비전력을 집중시키지만, 진정한 공격방향은 상황판단착오로 노출된 새로운 수비 허점을 예외없이 겨냥한다.

불확실성이 큰 글로벌 IT 생태계 경쟁에서 승리의 비결은 완벽한 수비보다는 공격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투입인력이나 자원 소요면에서 공격이 수비보다는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축구나 럭비게임에서야 경기규칙상 공수전환이 보장되어 있어, 지고 있는 게임에서도 역전의 기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글로벌 IT 생태계 경쟁에서 늘 수비 포지션(position)에만 머물고 있는 기업이나 국가가 역전할 확률은 제로이다.

2009년 2월 Daniel Eran Dilger는 RoughlyDrafted Magazine에 애플TV (코드명 iTV)에 대한 해석기사를 실었다. 기고문에서 그는 애플사가 2006년 가을 설익지만 새로운 개념의 애플TV 출시를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발표한 것은 미디어의 관심을 애플TV에 집중시켜, 당시 은밀히 추진하고 있던 차세대 승부수 아이폰의 개발을 은폐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해석했다. 이 해석이 옳다면, 세계 최고의 IT인프라를 자랑하는 우리는 지금 Apple의 `feint' 모션에 취해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온 국가가 나서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보장된 공수전환이 존재하지 않는 글로벌 IT 생태계 경쟁에서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전략'이 된다. 우리가 이미 진 게임에 온 수비수를 배치하는 사이, 선진 IT 공격수는 우리의 빈 수비공간을 찾아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예측컨대 다음의 글로벌 IT 생태계 격전장은 `차세대 TV시장'이 될 것이다. 이미 개방형 앱스토어에 기반한 생태계 전략이 세계적으로 노출된 이상, 생태계 전략 자체만으로 수비 포지션에서 공격 포지션으로 공수전환을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최근 국내 일부 사업자를 중심으로 개방형 IP-TV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콘텐츠 제작, 개발플랫폼과 앱스토어, 광대역인터넷, 지능형 STB, 차세대 TV에 이르는 콘텐츠 유통채널 전반에 걸쳐, 과감한 가치사슬 재편과 멀티스크린을 지원하는 컨버전스 혁신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미 LED TV, 3D TV 등 디스플레이 영역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컴퓨터, 모바일단말, 미래네트워크, STB 기술을 함께 잘 융합하여, 새로운 미래형 융합 IT생태계를 주도해 나간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선제공격이야말로 최선의 전략이다. 때론 불완전한 선제 공격이 완전한 대응방어보다 우월한 전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