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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도 방정식도 ‘대칭’이라 아름답다

나비도 방정식도 ‘대칭’이라 아름답다
수학자들의 난제풀이 역사, 흥미롭고 우아하게 풀어 써
“갈루아가 찾은 ‘대칭’ 비밀, 물리학 만물이론 만들 열쇠”
한겨레 허미경 기자 김경호 기자
» 나비도 방정식도 ‘대칭’이라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대칭의 역사〉
이언 스튜어트 지음·안재권 안기연 옮김/승산·2만원

팔랑거리는 나비가 아름답다면, 그 두 날개가 대칭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수식으로 채워진 방정식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등호’(‘=’·‘이퀄’)를 가운데에 두고 등가의 두 값이 팽팽히 긴장한 채 대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얼굴도, 인간의 몸도, 그 가운데를 위아래로 죽 내리긋는 선분을 상상할 때 좌우 대칭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완벽한 대칭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칭’(對稱·symmetry)은 ‘자기 닮음’이다. 이를 확장하면 ‘반복적 자기 닮음’이다. 인간은 대칭을 이룬 건물을 아름답다 느끼며, 자기 자신을 닮은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대칭은 아름답다’는 명제가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대칭의 역사〉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쓴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2007년)는 수학자들의 방정식 정복 과정을 톺아봄으로써 오늘날 물리학과 우주론을 구성하는 개념들 중 하나로 떠오른 ‘대칭’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글솜씨로 펼쳐놓는다. 자연의 패턴을 비롯한 대칭성 연구로 이름난 학자인 지은이는 수학에서 왜 아름다움은 반드시 참인지, 수학적 공식의 아름다움은 왜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곧장 맞닿아 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방정식만 해도 시쳇말로 ‘해골이 복잡’해지는데,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한 ‘대칭’이론까지 알아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지은이의 말을 따르면 대칭이란 자연 혹은 우주, 곧 물리적 세계를 보는 심오한 방식인바, 그 길로 가는 초입에서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방정식이다.

먼 옛날 3000여년 전에 유프라테스 강가 바빌로니아 문명의 수학자들이 2차방정식을 푼 이래, 인류는 끈질기게 방정식을 발견하고 풀어왔다. 고대 그리스 기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의 가장 큰 업적은 수학적 증명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 있다. 또한 유클리드는 증명이란 반드시, 이미 참으로 간주된 어떤 명제들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명제들은 증명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증명의 시작점은 증명되지 못한다는 ‘역설’이다. 중세 유럽의 암흑기엔 페르시아의 시인 우마르 하이얌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3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으며, 르네상스 수학자들은 3차와 4차방정식을 (증명은 못했지만) 풀어낸다.


인류의 방정식 정복의 여정은 그러나 5차방정식에서 멈추었다. 5차방정식은 250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는 프랑스 대혁명기 급진 혁명사상가이자 결투를 벌이다 21살에 숨진 천재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32)에 의해 비로소 ‘해결’됐다.

갈루아 이전에도 일부 5차방정식의 근(해)이 존재함은 알아냈는데, 문제는 ‘그 방정식의 근을 수학공식, 곧 대수(代數)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1828년 열일곱 살이던 갈루아는 어떤 5차방정식은 풀리는 데 반해 다른 5차방정식은 풀리지 않는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방정식이 지니는 대칭’에서 비롯됨을 발견했다. 요컨대 일반적인 5차방정식은 그것이 부적당한 종류의 대칭을 가졌기 때문에 근호(=루트)로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6차, 7차 등등 5차 이상의 방정식에서 다 적용된다. 이 해답이 수학과 물리학의 진로를 바꾸어놓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5차방정식을 풀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여 갈루아가 발견한 ‘대칭’으로부터 수학의 대확장이 시작된다.

갈루아에게서 시작되어 이후 더 촘촘해진 ‘대칭’이란 무엇인가. 대칭은 그 대상의 구조를 보존하는 변환이자 치환이며, 사물을 재배열하는 방식이다. 5차방정식은 풀 수 없다는 갈루아의 발견은 바로 ‘군’론(group theory)으로 나아간다. ‘군’은 대칭을 나타내는 언어다. 주어진 대상의 대칭들을 모두 뭉뚱그려 ‘군’이라 부른다. 대칭이란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의 창을 열었으니, 갈루아의 ‘군’론은 19세기 후반 들어 수학자 마리우스 솝후스 리가 생각해낸 연속적인 무한군, 곧 ‘리군’(Lie group)으로 발전한다. 이 ‘리군’이 현대 물리학의 화두인 시간, 공간, 물질의 심층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대칭’이 자연과 우주, 그 물리적 세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만물 이론’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 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 곧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이론적으로 서로 충돌하는데, 이 두 체계를 넘어 시공간에 대한 새 이론을 세우는 데 ‘군’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두 이론을 통합하려 했던 아인슈타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역사학도 출신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59)은 리군의 대칭 개념을 발전시킨 초대칭 개념(=양자장론)을 통해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통일하는 과정은 그저 난해한 수학적 과제를 푸는 문제일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펴낸이와 함께 ‘대칭 시리즈’ 승산 황승기 대표

“대칭이론, 양자컴퓨터 혁명 이어질 것”

아이들 수능에만 매달려서야…창의력 시대 따라갈 수 있나

» ‘대칭 시리즈’ 승산 황승기 대표

수학과 물리학에 관한 한, 승산출판사 황승기(63) 대표의 입은 침이 마를 새가 없다.

“‘주어진 직선이 있고 그 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선과 평행한 선은 하나밖에 없다’는 유클리드의 5번째 공준을 몇백년 동안 수학 천재들이 의심해왔죠. 기하학은 원래 이집트에서 나일강 농토 측량하며 발전한 거잖아요. 이집트에서 배운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에 한정됐죠. 기하학을 2차원 곡면(휘어진 면)으로 확장하면, 가령 나팔꽃에선 휘어진 선이 최단거리이고 이것이 직선이에요. 곡면에선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평행인 직선이 무한하다’고 봅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죠. 면의 개념을 평면에서 해방시키면 3·4차원. 다시 무수한 ‘n’차원이 되죠. 시공간이 독립된 게 뉴턴 역학이라면, 시공간이 맞물린다고 본 게 아인슈타인의 혁명 아닙니까.”

비유클리드 기하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유클리드의 ‘5번째 공준’을 질문했더니 황 대표는 곧장 볼펜으로 수식을 써가며 쉴새없이 말을 이어간다.

그는 지난해 펴낸 <무한공간의 왕> <미지수, 상상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 내놓은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를 승산출판사의 ‘대칭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꼽았다. 앞으로 <대칭>,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를 펴내면 모두 다섯 권의 ‘대칭 시리즈’가 된다.

그는 ‘대칭’이론을 소개하는 일이 한국 사회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고 믿는다. 그의 소명의식이다. “대칭이란 언어는 지금 막 열린 거예요. 5차방정식에 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해명한 갈루아의 혁명은 엄청난 겁니다. 대칭은 4차원을 넘어 몇백 차원까지 나와요. ‘군’론은 상상력이고 ‘추상화의 추상화의 추상화’입니다. 그것도 열일곱 살에 알아냈다는 거죠. 갈루아는 천재 중의 천재 ‘초천재’라고들 해요. 모든 학문이 수학으로 수렴돼요. 심리학? 온통 수학이에요. 철학, 경제학, 언어학, 물리학? 온통 수학이에요. 대칭이 중요하다는 것은 결국 수학이 주는 상상력이거든요.”

그는 ‘대칭’이론은 앞으로 산업구조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양자컴퓨터 개발로 연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는 세상을 다 통일해 버릴 수 있는 엄청난 기술입니다. 지금껏 메모리반도체를 발전시키고 인터넷이 빨리 깔리면서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만은 사실이죠. 21세기는 그것만으론 안 되죠. 컴퓨터혁명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관측도 있잖아요. 10년, 20년 뒤를 생각해 보자 이거예요. 지금 여러 나라에서 양자컴퓨터가 만들어진 지 10년째예요. 문제는 용량이 지금은 10~20비트 수준인데, 용량이 일정 규모 이상 되면 모든 나라 암호를 다 풀어요. 기술을 개발할 때 경우의 수를 현행 슈퍼컴으로 10년 걸려도 못하는 걸 양자컴퓨터는 몇 초, 몇 분 만에 끝내버려요. 산업구조가 확 바뀝니다.”

출판사를 차린 지 12년. 그는 <엘러건트 유니버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1~4), <뷰티풀 마인드> 등 까다로운 물리학과 수학 책만을 출간해 왔다. 그가 바라는 건 자라는 아이들이 도서관 등을 통해 그 책들을 읽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같은 책이 나오잖아요. 어떤 학생은 초등생 때 읽어요. <엘러건트 유니버스>도 2002년에 출간했는데, 초등생이 읽었더라고요. 그런 가능성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기름진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청소년들이 이쪽으로 뛰어들어와야 해요.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고, 호기심을 느끼고, 수학, 물리학, 양자론 쪽으로 가야 합니다. 입시제도를 손질해야 해요. 과학고만 봐도 시험 때문에 바빠요. 아이들이 여유가 있어야 해요. 수학 좀 모르면 어떠냐 이거예요. 수능 쉽게 내야 해요. 이래서야 어찌 21세기 양자기술산업시대를 대비하느냔 말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의 시대를 어떻게 대비하냐 이거예요.”

황 대표는 이른바 스타 수학강사로 일하다 1998년에 출판사를 냈다. 애초 10년쯤 책을 내고 이후 여행을 다니려던 그의 계획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책을 읽고, 책을 내고 정말 재미있어요. 너무 행복해서 더 하려고 해요.”

글 허미경 기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