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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Contents Technology

“지독한 자유 속에서 새 질서 생겨날 것”

“지독한 자유 속에서 새 질서 생겨날 것”



‘웹 이후의 세계’ 저자 김국현 씨.

‘웹 이후의 세계’ 펴낸 김국현 씨 인터뷰

40여 년 전 군사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터넷, 그리고 20여 년 전 효과적인 논문교환을 위해 고안된 웹(web). 이 둘이 만나 탄생한 신세계가 이제 개인의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경제, 산업구조까지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웹 이후의 세계'를 펴낸 IT(정보기술)평론가 김국현 씨(36)는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웹 혁명의 얼개와 현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기술을 뛰어넘은 이념으로서의 '웹 주의'를 주장했다. 현재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플랫폼 전략 조언가로 일하는 저자는 '웹2.0 경제학' '코드 한줄 없는 IT 이야기'등을 통해 웹이 사회 전반에 가져온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고 해설해왔다. 그를 만나 '웹 주의'에 대해 들어보았다.

● 웹2.0은 유행이 아닌 정치,경제 변화의 화두

- '웹 2.0'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지 3년이 넘었고 국내에선 거품 논쟁까지 벌어졌다. 아직도 줄기차게 '웹 2.0'을 이야기할 이유가 있는가?

"언젠가는 웹 2.0이 그냥 유행어였을 뿐이라고 규정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웹 2.0이 몰고 온 변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으며 현재 진행형이다. 웹은 이미 기능적 기술의 범주를 넘어 하나의 세계, 대안세계가 되어버렸다.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여러 가능성이 웹에서 실험되고 이루어진다. 그 세계가 단지 허상이 아니라 실재하고 있으며 나아가 현실도 바꿀 수 있음을 이미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기존의 제도, 관습에 근거한 수많은 산업들이 웹의 등장이후 적잖은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를 겪게 될 다음 타자는 아마 정치, 경제제도일는지도 모른다."




- 현재 이란에서는 웹이 불온한 무기이고 북한이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웹이 사회갈등을 부채질한다거나 혼란을 키운다는 권력자들의 불만이 함께 한다. 웹은 민주주의에 기여했나, 아니면 무관한가?

"웹이 주는 자유는 '무차별적 자유'다. 전혀 희석되지 않은 원액의 자유이기 때문에 너무 지독할 수도 있고, 실제 많은 부작용을 우리 사회도 이미 겪고 있지 않나. 그러나 그 지독함조차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중화되고 자생적 질서를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닐까?"


웹(web)은 현실이 갖고 있는 제약을 단숨에 극복해 개인의 자유 신장에 획기적인 기여를 해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책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상징되는 산업주의 시대가 끝이 난 오늘날 혁신은 '계획'으로 불가능 하다고 썼다. 오늘날 웹과 인터넷을 만들어 낸 것도, 웹의 미래를 바꾸는 주역도 정부가 아니라 창조적 개인 또는 민간기업이다. 향후 웹과 정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사실 정부가 웹 그 자체가 되려는 노력을 간절히 해야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웹의 세계 안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유비쿼터스, 모바일, 브로드밴드가 다 그같은 현상 아닌가. 하루에 모니터를 보는 시간은 점점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명실상부 최고의 브로드밴드 국가이다. 부존자원이 많은 나라인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나라가 반드시 좋은 나라이고 강국일 개연성이 사라졌다. 우리가 진정 IT강국이 되길 원한다면 이 부존자원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혁신과 발전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 정부도 IT가 유망한 부존자원이라고 보는 듯 한동안 무선시장이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가 얼마 전엔 IPTV로 옮겨갔고 지금은 방통융합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책 혼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공'이 많은 탓에 바다가 아닌 산으로 올라가버린 사례가 적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부가 신성장 동력이 무엇이 될 것이라 예단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게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특히 한국처럼 좁은 시장에서는 정부가 '선언'하는 순간 시야의 왜곡이 일어나곤 한다. 성장은 기업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용기에 주주가 투자를 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사이클을 이룬다. 정부는 이 용기가 공정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액티브X(Active X, 일반 응용프로그램과 웹을 연결하는 기술)의 예를 들어 보자. 이를 통해 사회표준을 정하고 그것을 제도권으로 규합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 당신은 그런 관행적인 행위가 의도하지 않게 사회에 악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정부가 모든 것을 관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표준화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것은 닫힌 사회, 목적이 분명한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사회에서 그 같은 방식은 발전과 진보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상식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상식이 우리의 미래의 덫이 될 수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 과거에 국가가 하던 역할을 웹이 대체한 측면이 많으니, 어찌 보면 웹과 정부는 경쟁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흥미로운 시각이다. 이미 웹에서 국가의 경계는 언어와 지역정보의 차이 정도로 희박해졌다. 구글처럼 세계의 정보를 관할하기 시작한 '초월적 정리자'들은 어떤 면에서 개별 국가 기관보다 강력할 수도 있음을 여러 형태로 증명하고 있다."

● 웹의 궁극적인 정신은 인간자유의 확대


뉴미디어의 막내인 웹(web)은 강력한 흡수력으로 미디어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등장했다. 과연 웹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사진은 ‘웹 이후의 세계’ 표지.
- 책에서 당신은 '웹 주의'가 곧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썼다. 하이에크는 잘 알려진 대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선구자 격인 사상가다. 그는 인간이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의 극한을 추구할 때 비로소 새로운 공익이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신은 그 자유의 구체적 실현방법으로 웹을 지목했는데….

"하이에크는 가장 잘못 이해되고 있는 사상가 중의 한 명이다. 신자유주의 논쟁 때문에 오히려 자유의 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니 안쓰럽기도 하다. 하이에크가 말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의 가능성을 웹 그 자체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개입하는 '인위적 질서' 없이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자유가 있다면 사회는 자생적으로 질서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웹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비슷한 일이 우리 삶과 사회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웹 주의'다."

- 오늘날의 웹은 혼돈 그 자체로 비칠 때가 많다. '웹 주의'는 어떤 세계를 가져올 수 있을까?

"웹 2.0 시대의 3대 현상으로 거론된 것이 '대안세계의 등장, 소수자의 대두, 기득권의 붕괴'였다. 그런데 그 붕괴란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해체와 생성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진정한 자유가 실험될 것이기에."

- 그럼에도 때론 비관적이다. 당신은 절망한 적 없나?

"절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을 찾아야 하고, 내가 겨우 찾은 희망은 여전히 여기(Web)에 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