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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상상마당 열린포럼 기획취재

제 14회 상상마당 열린포럼 기획취재
 
<예술가들의 학력과잉, 예술교육 이대로 좋은가>
 
 
언제부턴가 예술가들이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학부 졸업장 달랑 하나로 예술단체에 이력서조차 내밀지 못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천부적인 끼와 재능만으로 예술가로 인정 받고 존경 받는 시대는 어쩌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여행만큼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스펙도 없이 창작열에 불타 작업에만 몰두하는 무모한? 예술가를 찾아보기는 더더욱 힘들어진 시대 아닌가. 결국 과거 어떤 고난의 시절을 겪었든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스타의 반열에 오른 예술가들의 삶은 어느덧 예술가 지망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화려한 삶은 예비 예술가들을 꿈꾸고 욕망하게 만들었다. 갤러리 전시회에 갔을 때 전시된 그림보다 도록에 나열된 화려한 프로필에 먼저 눈이 갔던 사람이라면 감히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취업을 위한 ‘88만원 세대’의 치열한 스펙쌓기는 예술가 지망생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예술관련 학과에서 4년제 학부과정만으로 뜻을 펼치기에 현실은 고되기만 하다. 천 만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에 국내에서 석, 박사 과정을 밟았다 해도 그것이 자격증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해외 유학, 어학연수 등은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건 사람들이라면 필수코스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과연 이런 징후 속에 도토리 키 재듯 너도나도 비슷한 스펙쌓기가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고 또한 계속 필요한 것일까.
 

 

 
5월 29일 토요일 오후 두 시 KT&G 상상마당 4층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현실 즉, ‘예술가들의 학력과잉, 예술교육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이 좀 독특했던 이유는 예비 예술가를 꿈꾸는 참가자가 발제자로 참여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스펙쌓기에만 열중하다가 ‘예술박사’가 아닌 ‘박사예술’을 낳는 것 아닌가란 우려로 시작된 포럼은 현재 우리 예술 교육을 다시 되돌아보고 재점검하는 자리로 빛나고 있었다.
특히 이번 포럼에는 김종휘 하자센터 부센터장, 박훈규 현 상상마당 아카데미 디렉터, 임근준 미술 평론가 및 방송인이 패널로 참여했다. 김종휘 단장은 예술교육의 허와 실에 대해 박훈규 그래픽 디자이너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에게 59가지 조언을 들려주며 젊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젊은 예비 예술가들의 초상화 같은 열린포럼
 
상상마당 열린포럼 운영위원인 주희정 씨의 사회로 시작된 이날 포럼의 부제는 ‘라이센스 조차 되지 못하는 예술교육의 현장과 이에 대한 대안 모색’이었다. 김종휘 씨의 비유를 빌리면 14회 열린포럼은 ‘생방송 카운슬링 리얼리티 쇼’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패널들의 발제로 시작하던 지난 포럼과 달리 300여명이 제출한 포럼 참가 동기 중 포럼 주제와 잘 맞는 사례를 지닌 4명의 참가자들이 먼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발제자들의 사연을 정리하면 이렇다.
#1. 강남 설계사무소에 근무하는 11년 차 직장인 김씨. 그의 고민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업체와 미팅을 할 때 자연스레 나오는 학교 이야기나 팀원들 사이에서 더 우수한 대학을 나온 사람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과연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그는 궁금했다.
#2. 올해 성년의 날을 맞이한 새내기 대학생 노씨는 좀 독특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금산의 간디 학교를 다니면서 늘 더 큰 세상에 대한 동경과 문화적 갈증을 느낀 그녀는 휴학하고 하자센터 영상학교에 입학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 또래 친구들에 비해 진로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부딪쳐가며 한 경우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지만 대학 진학은 별 고민 없이 하게 되었다. 노씨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과연 대학교육이 나에게 필요한 것일까’ 회의를 느끼게 된 것. 하지만 고등학교 때 일찍 스스로 고민하고 길을 찾는 과정을 거쳤기에 그녀는 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다.
#3. 전씨는 서울 소재 대학 시각디자인과 졸업생이다. 그녀는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아 경력을 쌓을 생각으로 취업한지 5개월 째지만 그리 만족스럽진 못하다. 회사 규모도 작은데다가 공사 구분도 명확하지 않고 반복되는 야근에 주말, 공휴일 없는 회사생활에 지치게 된 것. 경력 3년을 채울까 아니면 유학을 갈까, 그것도 아니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할까 이 세가지가 요즘 그녀의 고민이다.
#4. 병역특례로 디자인 회사를 3년 다닌 후 프리랜서 생활 2년째인 신씨의 경우는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유학을 다녀오거나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 않을 만큼 그는 관심분야가 생기면 혼자 땅 파는 기분으로 섭렵한 결과 남들과 차별화된 자기만의 이력을 만들어냈다. 아직 20대인 그는 학부 졸업생임에도 대학 강의 제안을 받고 있다. 그는 예술가들도 노동자처럼 열심히 살아야 인정 받는 것 아니냐며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기 보다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자 주희정 씨는 마지막 발제자 신씨를 두고 학력이나 스펙이 높은 친구들을 부러워하거나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삶에 당당한 그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트리러 온 전도사 같다고 말했다. 네 명의 발제자들의 고민과 사연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열린 포럼에 참석한 예비 예술가들의 초상화나 다름없었다.
 
독특한 이력을 지닌 패널들의 ‘간지나는’ 고민 해결의 시간
 
어쩌면 초대한 패널들의 이력만으로도 포럼 주제의 대안이 아닐까. 참가한 패널들은 평범한 이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프로필은 마치 드라마에서 접하는 인물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임근준 씨는 자신이 어떻게 미술 평론가가 되었는지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후 독일의 디자인 운동에 매료되어 서울대 산업 디자인과에 진학하고 문화, 예술판을 기웃거린 학창시절부터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반까지 게이운동가로 활동하던 독특한 이력은 그가 <퍼블릭 아트>에 기고한 ‘대학졸업을 앞둔 예비작가에게’라는 59가지 코멘트만큼 혁신적이고 신선한 경험들이었다. 큐레이터가 된 과정이나 여행처럼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글쓰기와 이론가로서 새로운 제시를 하며 살고 있다는 임씨는 자신의 인생이 계획을 세워 여기까지 온 게 결코 아니라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명한 세기의 예술가들도 결국 모든 것을 다 쥐고 얻는 사람은 없었다며 실패의 두려움보다는 차라리 먼저 실패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커밍아웃을 하면서 학벌과 관련된 인맥을 모두 잃었지만 대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를 맺었다며 인맥 쌓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독특하게도 “자신의 인생을 구석으로 밀어 부치라”고 말했다. “음악, 퍼포먼스, 디자인, 회화 등 모두 다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지만 결국 이곳 저곳에서 깨지다 보니 글쓰기의 방법론을 세우면서 현재 이론가로 활동하는 것 아니겠냐”며 “자기를 완전히 루저로 밀어 부치면 길이 보인다”라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실패를 축적시키며 나 자신의 성공을 찾아라”라는 임씨의 말은 그가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얻은 삶의 비밀 카드를 살짝 보여주는 듯 했다.
현재 상상마당 아카데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씨는 또 어떤가. 영상,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실험하는 1인 스튜디오인 ‘파펑크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박훈규의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등 여행 책 저자로도 유명한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다. 하지만 그는 가끔 출신학교를 물어보는 사람들과 잠시 대화가 단절되는 것 빼곤 살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콘서트장에서 뮤지션들과 호흡하며 음악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VJ로 활동하고 또한 자신의 이름을 건 ‘박훈규의 트래블로그(Travelogue, Travel과 logue의 합성어)’란 강의를 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학벌이란 벽에 크게 부딪쳐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꾸준히 걸어왔고 하고 싶은 일을 눈치보지 않고 하니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그러다 보니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겼고 집이 스튜디오고 컴퓨터가 직원인 1인 스튜디오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중간하게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려고 인턴을 하는 사람보다 나와 다른 기술을 가진 친구들이 좋다”며 “서로의 다른 스타일이 합쳐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시너지 효과에 기대를 하는 편인데 그러기 위해선 자신만이 갖고 있는 기술을 만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박 씨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을 자주 다니라고 덧붙였다. 박훈규 씨는 틀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낭만자객 같았다.

 

국내 최초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의 단장이자 하자센터 부센터장인 김종휘 씨도 참가자들의 고민을 듣고 이야기를 거들었다. 그가 8년 전 라디오 토크쇼에서 20대 중반의 고민을 들어줄 때나 지금이나 고민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그는 발견했다. “과연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나”와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게 20대들의 고민이라는 것. 김씨는 이어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하고 싶은 게 진짜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노리단을 예로 들며 오히려 비전공자들을 많이 고용하는 편이라며 틀에 박힌 사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모일 수록 더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배우 출신이 아닌 사람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활동할 때 누가 전공자인지 구분이 안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게 진짜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한번 해보세요. 일정기간 동안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 취미도 확실하게 해보는 게 더 가치가 있습니다”라며 인생의 멘토 같은 여유로움을 보였다.
세 명의 톡톡 튀는 패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주희정 씨는 “연애할 때는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 붓는데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과연 나를 설레게 하고 미치도록 하고 싶은 건지 되묻고 싶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 주 씨는 “인생에서 반쪽을 만나 한번의 선택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데 교육은 한번 선택하고 끝나는 게 아니어서 더 행복한 거 아니겠냐”며 “한 사람만이 아닌 여러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젊은 여러분은 더 행복한 거 같다”고 희망의 포럼의 마침표를 찍었다.
패널로 초대된 예술가들이나 참가자로 온 예비 예술가들 모두가 설레고 가슴 뛰게 했다는 점에서 서로를 자극하는 열린 포럼은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포럼의 주제 “예술가들의 학력과잉, 예술교육 이대로 좋은가”의 대안이 되는 듯 했다. 왜냐하면 예술가란 현재를 부정하고 스스로가 대안을 만들어 내는 발명가이기 때문이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