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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과 한으로 '병신춤' 공옥진 1인 창무극 마침내 무형문화재

흥과 한으로 '병신춤' 공옥진 1인 창무극 마침내 무형문화재

  • 입력 : 2010.05.21 03:00
천대와 멸시, 흥(興)과 한(恨)이 뭉쳐진 온몸으로 관객을 주무른 광대 공옥진(79)이 지방 무형문화재가 된다. '병신춤'으로 더 잘 알려진 공옥진의 1인 창무극(唱舞劇)은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라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창조한 노래·춤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다.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위원장 김정호 진도문화원장)는 20일 심의위원회를 열고 공옥진을 '판소리 1인 창무극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예고했다. 전남도 문화재위 관계자는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이 '심청가' 등 판소리에 바탕을 두고 발전된 것으로, 보존 전승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공옥진은 1931년 전남 영광에서 명창 공대일의 딸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일본으로 보내져 신무용가 최승희 밑에서 식모로 살았던 그는 해방 후 돌아와 광주 양림동 다리 밑에서 공연했다. 전통 판소리나 재담극을 춤과 소리로 엮어 모노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1970년대 후반 서울에 진출한 그는 곱사춤·원숭이춤에 걸쭉한 사투리를 곁들이며 사랑받았다. 대학축제에 불려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1998년 뇌일혈로 쓰러지고 나서는 기력이 달려 거의 공연을 못했다. 아주 가끔 관객을 만날 때는 "공옥진, 이 촌년이 쓰러져부렀어요. 입도 돌아가고, 손가락도 안오그라들고, 발도 마비됐어요…" 하면서도 웃는지 우는지 야릇한 얼굴로 춤추고 재담과 소리를 했다. 공옥진은 뇌일혈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쓸쓸하고 궁핍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해 언론보도로 알려지며 다시 주목받았다. 그의 집으로 보약과 쌀 등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은 이번에 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되면서 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전남도 문화재위는 "공옥진의 공연 자료를 모으고 활용하는 작업과 함께 전수 활동도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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