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생태계/Contents Technology

쿼바디스, CT(CULTURE TECHNOLOGY)와 문화산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예전에는 산업을 1차, 2차, 3차로 구분했다. 농업과 어업, 임업 등이 1차 산업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2차 산업인 제조산업,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이 발전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IT산업은 2차산업에, 문화산업은 3차산업에 속한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구분이 의미를 잃었다. IT산업은 정보를 "캐거나" "경작"하는 1차 산업적인 면도 있고, 정보를 "제조"하는 2차산업적인 면도 있고, 그리고 정보를 "서비스"하는 3차산업적인 면도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농업산업, 교육산업, 자동차산업, 중화학산업, 의류산업 등과 함께 IT산업이나 문화산업이 동일한 레벨에 위치한다. 즉, 산업 분야 간의 계층적 구조는 무너진지 오래다.

미래에는 어떨까? 상품의 가치는 물질적인 가치나 기능적 가치보다 감성적, 문화적 가치에 의해 정해지는 추세이다. 이제 더 이상 “선명한 화면”을 가진 TV가, “우리나라 지형에 강한”휴대폰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아니다. 상품의 가치는 감성코드와 문화코드에 의해 정해지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추세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이렇듯 재화의 교환가치가 줄어들면서 문화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해 진다면, 문화산업이 타 산업의 인프라 역할을 할 것으로 예견된다. 물론 문화산업 그 자체의 중요성도 크지만 말이다.

그런데 현 시대의 문화산업은 예전의 문화산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기술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기술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 게임분야는 말할 것 없고 영화산업도 CG를 이용한 특수효과가 멜로드라마에서조차 사용될 만큼 보편화되었고 최근 붐이 불고 있는 3D 입체영화는 그야말로 기술의 결정체이다. 이 경향은 더욱 가속될 걸로 예상된다. IPTV는 방송산업과 통신산업 간에 융복합을 더욱 촉진시키고, e-Book은 출판산업 구조를 크게 바꿀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는 초고속인터넷과 가상현실 기술이 문화산업은 물론 예술 분야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문화산업의 어떤 분야이건 간에 그 분야에 활용되는 기술은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CG 기술은 애니메이션은 물론, 방송 콘텐츠에도 사용되고 게임에도 사용된다. 음향 기술도 마찬가지고 로봇 기술도 그렇다. 초고속 인터넷 기술은 현재는 IPTV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문화콘텐츠 전반에 혁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스토리텔링 기술 역시 어떤 문화콘텐츠를 막론하고 빼 놓을 수 없는 기술이다. CT(Culture Technology)가 학술적으로는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의 융복합을 의미하지만 산업적,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화산업, 특히 문화콘텐츠 산업을 지원하는 공통 기반기술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을 것이다.

CT에 대한 반대 의견 중 가장 큰 목소리는 “꼭 CT일 필요가 있는가? 기존의 IT를 필요할 때마다 문화산업에 가져다 활용하면 되지 않는가?”이다. 필자는 지난 20년 간 많은 경험을 통해 이것이 매우 비효율적이거나 심지어 어떤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몸으로 체험했다. 그랬기에 CT라는 용어를 만들고 프레임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IT기술이 바로 문화콘텐츠에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예전 아날로그 시대에는 기술과 문화를 분리하여 다루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디지털 시대에 들어 기술과 문화가 융합되고 미디어와 콘텐츠가 융합되는 시대에는 기술개발-콘텐츠기획-제작-유통-소비-재투자의 사이클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고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행할 수 있는 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CT분야의 고급인력 양성을 목표로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한지 만 5년 째 접어 들었다. 설립 초기에는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 조차 CT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졌다. 지난 5년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착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동안 100명 가까운 인력이 배출되어 산업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우리나라 문화산업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CT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으로서 지나간 과거보다는 미래에 더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 핵심은 기술과 문화, 기술과 문화산업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설정이다. 기술이 문화산업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 서비스나 콘텐츠는 무엇인가? 어떤 기술을 확보해 두어야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항상 내 머리를 감돌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기에, 보다 구체적인 이슈를 만들어 항상 가지고 다닌다. 나는 이것을 “CT 10대 이슈”라고 이름지었다. 이 자리를 빌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니 함께 고민해 보자.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시면 연락주시기 바란다.

1. 우리나라도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닌텐도 위 같은 게임콘솔기 하나는 만들어 봐야 하지 않는가?

2. 온라인게임은 대한민국이 MMORPG를 앞세워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상대적 우위가 급속히 줄어 들고 있다. Post-MMORPG는 무엇일까?

3. 고예산 문화콘텐츠 (영화, 게임, 페스티벌 등)의 제작비용과 제작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기술과 DB 기술이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

4.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킬러 서비스나 콘텐츠는 무엇일까? 세컨드라이프의 뒤를 잇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5. 로봇 기술을 어떻게 문화콘텐츠화 할 것인가? 소니(Sony)도 엔터테인먼트 로봇 시장에서 발을 뺏지만 오히려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

6. UCC (User-Created Content)는 초기에 텍스트를 거쳐 현재는 사진, 비디오까지 진보하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7. 소셜미디어는 초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현재 페이스북, 트위터에 밀려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소셜미디어가 아직 초창기라고 볼 때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8. 3D 입체 영화가 과연 대세인가? 3D 이후는 무엇일까?

9.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현재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갈 것이고 그 다음은 무엇일까?

10. 현재 100메가 급인 인터넷망은 수 년 내에 기가 급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것이 콘텐츠 산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볼 때, 문화콘텐츠라는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지만 현 시점에서 CT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절로 나온다. CG, 가상현실, 디지털음향, 네트웍미디어, 소셜컴퓨팅, 인터액션, 디지털 스토리텔링. 이상 일곱가지 기술을 확보해 놓으면 어떤 미래가 오든지 해 볼만할 것이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