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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조선데스크] 누가 최고은씨를 죽였나

[조선데스크] 누가 최고은씨를 죽였나

  • 입력 : 2011.02.11 23:29
한현우 대중문화부 차장대우
작년 5월 곽지균 감독이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금세 잊었다. 6개월 뒤인 11월 싱어송라이터 이진원이 반(半)지하방에서 쓰러졌을 때도 그의 빈소엔 인디 뮤지션들만 그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남는 밥과 김치 좀 달라'는 쪽지를 남기고 숨진 사실이 열흘 만인 지난 8일 알려졌다. 불과 9개월 만에 가난한 예술가 세 명이 너무도 가난한 모습으로 죽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세 사람은 모두 '무명(無名) 예술가'는 아니다. 영화 '겨울 나그네'를 연출했던 곽 감독은 한때 흥행 감독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선 잊히다시피 했다. 이진원은 홍대 앞에서는 유명했지만 TV가 외면했다. 최고은은 국내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그의 글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예술 창작 외엔 할 일이 없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돈 되는 다른 일'을 하기엔 영화와 음악을 향한 이들의 사랑이 너무 뜨거웠으며 예술가의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이들의 죽음을 시장(市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윤이 나는 쪽으로 움직이는 자본이 이들을 외면한 것은 사실(fact)이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아니다. 팔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쓰고, 인기 없는 노래를 부르며, 히트작을 만들지 못한 예술가는 냉정한 시장의 변방으로 밀리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빈궁한 삶과 쓸쓸한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문화예술가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그들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나 그들이 세끼 밥을 먹고 건강 검진을 받고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그것이 바로 복지정책과 문화예술정책의 요체 중 하나다.

그런데 정부의 대중문화정책은 오로지 '돈 되는 쪽'에만 집중돼 있다. 전임 문화부 장관은 취임 직후 대형 연예기획사가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기자회견을 열더니 '한류' 또는 '신한류'라는 이름으로 대중문화를 수출산업인 양 취급했다. 외국에서 돈 버는 아이돌 그룹엔 정부 예산을 지원해주고, 국내에서도 돈 못 버는 뮤지션들의 지원 신청은 퇴짜 놨다.

모든 영화감독이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모든 뮤지션이 댄스음악을 만드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예술영화와 실험음악도 꾸준히 창작할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곽지균 감독이 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힘들다'는 유서를 쓸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진원이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란 가사를 쓸 때 기분은 또 어땠을 것인가. 최고은씨가 남긴 쪽지에서 '창피하지만'이란 단어가 유독 마음에 걸린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허기가 아니라 수치였을 것이다.

이제 그 수치심은 살아 있는 우리의 몫이다. 32세의 영화인이 차디찬 방에서 홀로 죽도록 내버려둔 나라, GDP 세계 15위의 OECD 회원국이며 G20을 유치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삼류영화 같은 현실이 부끄럽다.